No. 54
유기견은 사람의 그림자를 세어 본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151쪽
유기견은
사람을 세지 않는다
지나간 뒤에 남는
그림자의 수를
가늠할 뿐이다
몸이 아니라
빛이 빠져나간 자리,
잠시 늘어났다가
곧 사라지는 형태
그림자는
말을 남기지 않았고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기견은
그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나,
지나갔고
또 하나,
멈추지 않았으며
다음은
같은 방향으로
겹치지 않았다
그림자를 센다는 것은
기대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겹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보지 않지만
유기견은
사라진 쪽을
끝까지 본다
몸이 아니라
남겨진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유기견은
사람의 그림자를
세어 본다
사회가
지나간 숫자만
기록할 때
그 그림자만
유기견의 눈 안에서
조용히
개수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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