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73
유기견은 떠난 자리를 건너지 않는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04쪽
유기견은
사라진 쪽을
밟지 않는다
그곳은
비어 있지만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떠난 자리는
길이 아니라
멈춤이
놓여 있는 위치였다
유기견은
그 앞에서
속도를 낮춘다
건너간다는 것은
없어졌다는 사실을
넘어섰다고
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기견은
그 말을
몸으로 하지 않았다
발을 옮기지 않는 선택은
되돌아가겠다는 뜻이 아니라
사라짐을
확정된 채로
두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떠난 자리를
건너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돌아서지 않느냐고
그러나
돌아서기 위해서는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
유기견에게
떠난 자리는
지나갈 수 없는
시간의 경계였다
그래서
유기견은
떠난 자리를
건너지 않는다
사회가
빈 곳을
다음 장면으로
덮어버릴 때
그 경계만
끝까지
남아
유기견의 몸 앞에서
조용히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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