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7

유기견은 문을 향한 자세를 풀지 않는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49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87번 「유기견은 문을 향한 자세를 풀지 않는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문을 향한
각도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러 번
확인된 뒤에도
자세는
풀리지 않았다
풀린다는 것은
더 이상
그 방향을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유기견에게
그 선언은
도착하지 않았다
몸은
문을 향해
낮게 정렬되어 있었고
그 각도는
기대보다
안정에 가까웠다
자세는
움직임을 요구하지 않았고
결과를
앞당기지도 않았다
다만
사라짐이 일어난 쪽을
잊지 않기 위해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풀어도 된다고
그러나
풀라는 말은
다른 기준이
주어졌을 때의
언어다
유기견에게
문은
아직
기준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기견은
문을 향한
자세를
풀지 않는다
사회가
방향을
쉽게 바꾸는 동안
그 몸만
끝까지
같은 각도로 남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세로
조용히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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