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8

유기견은 발소리를 희망처럼 놓아둔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99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38번 「유기견은 발소리를 희망처럼 놓아둔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발소리를
앞당겨 부르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같은 거리에서
놓아둔다
아스팔트 위에
잠시 남았다가
사라지는 리듬
그 위에
기대는
덧씌워지지 않았다
발소리는
확실하지 않았고
유기견은
그 불확실함을
수정하지 않았다
다가오는지
지나치는지
끝내 멈출 것인지
판단은
소리가 멎은 뒤에
천천히 내려졌다
그래서
발소리는
희망이 되지 못한 채
희망처럼
그 자리에 놓였다
잡지 않고
밀어내지 않으며
도망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
유기견은
그 간격을
몸으로 기억했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가 되었고
너무 멀면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기대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기대가 아니라
아직
치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유기견은
발소리를
정리하지 않는다
사회가
다가오지 않는 약속을
계속 만들어 놓는 동안
그 발소리만
희망처럼
놓인 채
지나가도
문제 삼지 않고
멈춰도
소란을 만들지 않으며
이곳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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