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
그날은, 유기견이 문을 믿었던 시간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4쪽
그날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유기견에게는.
문은 움직이지 않았고
손잡이는 식어 있었지만,
열릴 수 있다는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다.
유기견은 그 앞에 머물렀다.
기다림이라는 말 없이,
문이 해왔던 역할을
조용히 신뢰하면서.
시간은 흘렀지만
그날의 시간은
앞으로 가지 않았다.
문 앞에서 멈춘 채
서성였다.
사람은 믿지 않아도
문은 믿을 수 있다고
유기견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문은 한때
열렸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날은
유기견이
세상보다 먼저
문을 믿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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