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9

유기견은 남겨진 시간에 익숙하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165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59번 「유기견은 남겨진 시간에 익숙하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시간이 남는 쪽을 안다
사건이 끝난 뒤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몸이 먼저 배웠다
남겨진 시간은
설명이 없었고
속도도 없었다
그래서
유기견은
그 안에서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오전,
아무도 오지 않는 오후,
아무 일도 정리되지 않은
저녁까지
시간은
하루를 만들지 못한 채
그냥
겹쳐졌다
유기견은
그 겹침에
놀라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남겨진 시간은
기대도
포기도 없이
그 자리에 머물렀고
유기견은
그 곁에
몸을 두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루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지루함은
다음이 있을 때의 감정이다
유기견에게
남겨진 시간은
끝난 뒤에 남은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유기견은
남겨진 시간에
익숙하다
사회가
시간을
앞으로만 사용하려 할 때
그 시간만
여기에 남아
유기견의 몸과 함께
아무 설명 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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