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9

유기견은 부르지 않아도 존재한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55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89번 「유기견은 부르지 않아도 존재한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이름이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지우겠다는 뜻이 아니라
관계를
생략하겠다는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존재는
호명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숨이 있고
체온이 있고
자세가
여기에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기견은
불리지 않아도
움직이고
머물고
시간을 통과한다
대답이 없어도
질문이 없어도
몸은
여전히
이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불리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고
그러나
없는 것과
불리지 않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유기견은
그 차이를
몸으로
살아 왔다
그래서
유기견은
부르지 않아도
존재한다
사회가
이름으로만
존재를 확인하려 할 때
그 존재만
끝까지
호명 없이 남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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